"명품 사는 것보다 좋아요"…MZ세대 지갑 연 의외의 물건 [현장+]

입력 2023-04-26 18:39   수정 2023-04-27 01:46


"추억 사는 게 취미가 됐어요. 요즘 많은 걸 잊고 사는데, 그중 하나가 추억이에요. 그래서 문구점에 가요. 잠시나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잖아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에서 만난 이모 씨(33)는 최근 "명품 사는 것보다 '고전 문구' 사는 게 더 행복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헬로키티 탁상시계, 아바타 스티커 북, 포켓몬 피규어(모형 인형) 등 이 씨가 이날 구매한 '고전 문구'만 총 5개. 이 씨는 3개월 전부터 옛 추억에 빠져 어린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문구류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이 씨와 같이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어릴 적 감성과 분위기를 간직하고 싶어 하는 '키덜트족(kidult)'들이 '고전 문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전 문구'는 1990년~2000년대 초반 감성의 문구류로, 오래전 생산돼 지금은 생산되지 않거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문구를 뜻한다. '뉴트로(new+레트로)' 열풍에 더해 최근엔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MZ(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키덜트족이 성행한 지는 오래지만, 최근 들어 특히 어린 시절 감성이 그대로 담긴 문구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각종 문구·완구 업계에서 MZ세대가 경험한 시절의 감성을 반영한 문구를 선보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추억의 문구류를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소비하는 현상을 보이는 것.

MZ세대의 옛 추억을 자극한 소비를 이끈 키덜트 시장의 성장세는 수치로도 증명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1조 6000억원으로 3배 이상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키덜트 시장이 향후 최대 1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올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네버랜드 신드롬'을 내세우기도 했다. '네버랜드'는 피터팬과 친구들이 늙지 않고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사는 곳을 뜻한다. 어린 시절을 동경하면 '철없다'는 취급받던 이전과 달리, 키덜트가 하나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방문한 창신동은 '어린이들'보다 '어른이들'이 더 많이 보였다. 가게마다 20~30대 남녀가 모여 "와, 이거 추억이다, 사야겠다"라며 연신 감탄사를 내보였다. 2007년 제조된 헬로키티 도어벨, 2005년 제조된 포켓몬 시계, 2013년에 나온 캐릭터 다이어리 등에 관심을 보이는 소비자들도 여럿 있었다.

창신동에서 문구류를 판매하는 홍모 씨(55)는 "최근 아가씨들이 아이들보다 더 헬로키티 상품을 많이 찾는 느낌이다"라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만 파는 '희귀 문구'를 사러 왔다고 하는 어른들도 많아졌다. 예전에 안 팔려서 창고에 넣어뒀던 문구를 다시 꺼내뒀더니 어른들 반응이 더 좋다"고 귀띔했다.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들보다 대학생, 20~30대 성인들이 더 많은 분위기였다. 자신을 자칭 '문구 수집가'라고 소개한 이모 씨(27)는 "올해 생긴 취미가 어린 시절 봤던 만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 상품을 모아서 진열대에 보관해두는 것"이라며 "추억이 깃든 물건을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고모 씨(24)는 "어릴 적 비싸서 부모님이 사주지 않던 문구를 이젠 돈을 직접 벌어서 직접 살 수 있어 뿌듯하고 좋다"고 말했다.

고전 문구 구매에 대한 열기 못지않게 각자 구매한 '추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고자 하는 젊은이들도 많은 분위기다. 대학교나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고전 문구'를 함께 모으고 인증하거나, 거래할 모임을 구하는 사람들, 유튜브에 고전 문구를 구매한 후기, 추천, 탐방하는 등의 콘텐츠를 올린 이들도 적지 않다.

고전 문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중고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당근마켓 등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정가 5000원가량 하던 캐릭터 다이어리가 10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시세로 20배 넘는 가격에 거래가 이뤄진다. 동네 문구점에서 1000원이 넘지 않았던 콤파스 세트는 5000원에, 과거 1000원에 팔렸던 종이 인형이 10만원에 판매되는 등 기존 가격에서 기본 10배 이상 넘는 가격에 매물이 올라오고 있다.

얼마 전 당근마켓에서 얼마에 2000년대 출시된 아바타 스티커 북을 구매했다는 정모 씨(27)는 "어린 시절 코디 북은 용돈 모아서 살 정도로 비쌌었는데, 이제는 그보다 10배 넘는 가격을 주고도 부담 없이 사고 있다"며 "어린 시절 쉽게 가지지 못했던 물건을 마음껏 구매하는 데에서 오는 행복감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키덜트족들이 고전 문구에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현상은 '희소성'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에서 나온다고 해석했다. 과거에만 판매돼 현재 생산이 중단되고, 희소가치가 있는 문구류를 소지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아닌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물건들은 희소가치가 높다고 판단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이런 물건들은 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끼리 연결되기 쉬운 온라인상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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